마음이 무거울 때가 있죠. 요즘이 그렇습니다. 주차장에 앉아, 잔잔한 재즈를 들으며, 가로등 불빛이 부서지는 차창 밖을 한참이나 응시했던 적도 여러 번입니다. 봄을 타는 걸까요. 마침 홍매화 시즌입니다. 저 멀리 남쪽 통도사에 홍매화가 피었다는 이야기가 들려오고 있습니다. 주저 없이 길을 나서기로 했죠.
통도사는 멀었습니다. 고속도로로 한참이나 달리다가, 국도로 방향을 틀었어요. 산 넘고 물 건너서. 봄의 기운 어렴풋이 느껴지는 풍경을 찾아가는 순간이 꽤 오묘하게 느껴집니다. 통도사 입구에 차를 주차했습니다. 차량으로 일주문을 지나면 주차요금이 포함되거든요.
뭐, 무료주차장을 이용하려는 것도 있었지만, 사실 걷고 싶었어요. 안쪽으로 길게 무풍한솔길이라는 이름의 소나무 숲길이 있습니다. 걷기에 좋은 길이에요. 차도와 분리되어 이어지는 길이라 고요하고 평온합니다.
양산천에는 어느덧 봄기운이 완연합니다. 흙길을 자박거리며 걸어도 좋고, 길에 놓인 의자에 앉아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기에도 좋습니다.
홍매화를 보러 왔다고 하기에는 통도사의 근엄한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마치 고궁의 어딘가를 거닐고 있는 것만 같아요. 그만큼 역사적으로도, 규모 면에서도 어마어마합니다.
최근에 지은 전각은 단청으로 꾸몄지만, 오래된 건물일수록 옛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보물 제1826호로 지정된 통도사 영산전이 대표적입니다. 화려함보다는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마음에 듭니다. 고즈넉한 사찰에 이렇게 또 반하고 맙니다.
불교 사찰에는 다섯 개의 문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불이문은 부처를 만나러 가는 마지막 관문이죠. 그 너머로 통도사의 가장 위엄 넘치는 전각이 있습니다. 대웅전입니다. 대웅전은 중후한 인상을 지닌 주지스님을 닮았습니다. 석가모니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다는 금강계단 옆에서 오랜 세월을 함께 한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오랜 역사가 담긴 듯한 나무의 결이나 수선의 흔적들이 긴 시간을 품어내고 있습니다. 대웅전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는 기분이에요.
대웅전 앞, 방문객들이 작은 소원을 담아 꽂아 놓은 향불이 은은한 향을 흩뿌립니다. 대웅전 뒤 연못도 마찬가지. 사람들의 소망이 담긴 동전이 물 속에 수북이 쌓여 있습니다. 홍매화를 만나러 온 것인지, 천년고찰을 둘러보기 위함인지 사람이 많았지만, 왠지 모르게 평온했어요.
돌고 돌아 홍매화를 만났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은은한 향이 코를 간질였으니, 홍매화가 저를 불러 세운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유난히도 길었던 겨울이 무색하게 느껴졌습니다. 봄이었어요.
영각 앞에도 예쁘게 꽃이 피었습니다. 여기가 홍매화 성지라고 불리는 곳이더랬지요. 봄이 오고 있음을 자각했습니다. 전통 무늬로 가득한 영각과 홍매화나무가 어우러지며 한국적인 색채를 선보입니다. 아직 100% 개화한 것은 아니지만, 뭐 어떻습니까. 봄이 왔다는데.
홍매화를 보는 데 두어 시간은 쏟은 거 같아요. 주변이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해가 떨어진 뒤에도 홍매화는 여전히 아름다웠습니다.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린 풍경인가요, 이게.
- 위치: 경남 양산시 하북면 통도사로 108
- 전화번호: 055-382-7182
- 개방 시간: 08:30~17:30
- 관람요금: 성인 3,000원 / 청소년 1,500원 / 어린이 1,000원
- 주차요금(일주문 내 통도사 경내 주차장): 소형 2,000원 / 버스 3,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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