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때문에 담양에 들렀다가, 시간이 남아서 죽녹원을 산책하기로 했다. 오랜만이다. 이번에는 후문으로 들어가보기로 했다. 후문은 처음이다. 사람들도 이쪽 입구는 잘 모르는 것인지, 고요했다. 평일 오후이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후문 쪽으로는 넓은 주차장이 만들어져 있다. 자가용으로 담양에 방문한 사람들이라면 정문보다야 이쪽이 훨씬 더 접근성이 좋았다. 물론 죽녹원을 넘어 담양국수거리나 관방제림까지 걷는다고 하면 돌아오는 길이 쉽진 않겠지만.
매표소를 지나면 한옥 건물 하나가 눈에 띈다. 추성창의 기념관이다. 임진왜란 당시에 호남 지방의 의병이 일어났던 곳이 담양 추성관이었는데, 이를 복원한 것이란다. 뜻깊은 역사의 현장이다. 추성창의 기념관을 비롯해 10여 채의 한옥 건축물이 모여 있는 죽녹원의 후문, 남쪽 구역을 ‘시가문화촌’이라고도 부른다. 여기서 예전에 KBS2 예능 프로그램인 <1박 2일>을 촬영한 적도 있었지.
학교에서 배웠던 송순 선생의 가사 ‘면앙정가’, 그 면앙정이 담양에 있다(기억이 안 나시면 공부를 덜 하신…크흠). 그것도 이곳 죽녹원에 있다. 물론 이 또한 재현한 누각이다. 면앙정가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면앙정은 송순 선생이 가사를 지은 곳이다. 실제 면앙정은 다른 곳에 있다(전남 담양군 봉산명 면앙정로 382-11).
시가문화촌 내에는 식영정을 비롯하여 광풍각, 송강정, 환벽당, 명옥헌 등등 담양의 고 건축물을 그대로 재현해 모아두고 있다. 건물마다 옛 인물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으니 함께 살펴보는 것을 권한다. 추월당이라는 이름의 한옥 카페도 꽤 매력적이었는데, 여기에 눌러 앉으면 문 닫을 때까지 죽녹원을 모두 둘러볼 수 없을 것 같아서 패스.
매년 겨울 남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이유는, 따스해서다.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한겨울이었는데도 어디선가 물이 졸졸 흐르는 모습이 들려온다. 대나무를 이여 붙여 만든 해먹에 잠깐 누워 쉬어볼까 싶다가도, 숲속에 온전히 내 몸을 맡기는 편이 좋을 것 같아 걷기로 했다. 대나무 숲은 야트막한 산을 둘러둘러 이어진다.
대나무 하면 떠오르는 동물인 판다 조형물이 곳곳에 있다. 죽녹원의 마스코트인지 중국인 관광객을 노리고 만든 것인지는 모르겠다. 곳곳에서 예술 작품을 만나기도 한다. 죽녹원 미러큐브라는 작품이 대표적이다. 제2의 백남준이라는 평이 있을 정도로 독창적인 미디어 아트를 선보이고 있는 이이남 작가의 아트센터도 죽녹원 한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다.
대나무 숲을 걷다 보면 차나무를 발견하게 되기도 하는데, 이게 또 고급이다. 죽로차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죽녹원에서는 담양이 죽로차의 본고장이라는 의미를 담아 차나무를 기르고 있단다.
죽녹원은 대나무 숲이라는 독특한 풍경 덕분에 여러 영화와 드라마의 촬영지가 되기도 했다. <알포인트>, <일지매> 등이 대표적이다. 둘다 너무 오래된 작품이라 기억도 가물가물하지만 그래도 촬영지라는 게 어디야. 관련 조형물도 찾아볼 수 있다.
정문 쪽에도 전망대 겸 카페가 하나 있다. 뭐, 카페가 아니더라도 쉬어갈 만한 공간이 곳곳에 있다. 앞서 이야기한 해먹도, 시가문화촌도 그중 하나다. 천천히 걷는다면 죽녹원의 진가를 제대로 느낄 수 있을 거다. 이게 힐링이지, 뭐.
대나무 숲 사이로 거닐다 보면, 그간 무뎌졌던 오감이 되살아나는 것이 느껴진다. 흙을 밟는 느낌,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대나무가 서로 부대끼는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다른 이들의 대화 소리가 수만 개로 레이어로 나뉘어 온몸으로 퍼진다.
여기저기 다니면서 수많은 숲길을 걸었지만, 죽녹원만큼 마음이 편안해졌던 공간은 쉽게 찾을 수 없었다. 언제나 늘 같은 풍경으로 맞아주는 모습 덕분이려나. 앞으로 종종 찾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죽녹원을 빠져나왔다.
- 위치: 전라남도 담양군 담양읍 죽녹원로 119
- 주차: 정문 담양종합체육관 쪽 주차장 이용 가능, 후문 매표소 앞 무료 주차장 이용
- 개방시간: 3월~10월, 09:00~19:00(입장마감 : 18:00) / 11월~2월, 09:00~18:00(입장마감 : 17:30) / 연중무휴
- 관람요금: 일반 3,000원 / 청소년 및 군인 1,500원 / 초등학생 1,000원 (이이남아트센터는 추가 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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