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암호의 안개가 가득했던 어느 날 새벽, 송광사에 도착했다. 이른 아침이어서일까. 천년고찰 앞은 한산했다. 오롯이 이 숲을 혼자서 즐길 수 있다는 뜻이었다. 다행이었다. 주차장 끄트머리에 차를 두고, 경내로 들어섰다. 조금이라도 더 걷고 싶어서였나. 이유는 잘 기억 나지 않는다. 흙덩이가 발밑에서 바스러지며 소리를 내고 있었다. 자박, 자박. 그 소리가 꽤 경쾌했다. 새들의 지저귐은 고풍스러운 클래식 음악과도 같았다. 적당히 습기를 머금은 공기는 왠지 모르게 더 깨끗하게 느껴졌다. 숲의 틈 사이로 햇볕이 스며들었다. 오솔길 옆으로 흐르는 물줄기는 여느 때보다도 신난 듯한 모습이었다. 도시 생활자의 무뎌진 오감을, 자연은 그렇게 섬세하게 자극했다. 편백 숲이 있었다. 그사이에 놓인 의자가 보여 잠시 쉬어가..